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, 그가 원했던 역할은 완성될 수 있다.


2020년, 감독 코어트 부르헤스는 배우 발 킬머에게 역할을 제안했다. 신부이자 아메리카 원주민 영성가 — 킬머의 정체성과 맞닿은 인물. 킬머도 원했다. 하지만 그는 촬영장에 설 수 없었다.

목 수술 후유증으로 목소리를 잃어가던 중이었다.

2025년 12월, 킬머는 세상을 떠났다. 영화는 아직 미완성이었다.


감독이 선택한 건 재캐스팅이 아니었다.

킬머의 유족은 AI를 허락했다. 젊은 시절 사진, 만년의 영상, 손상된 목소리까지 — 모두 제공했다.

“그는 이 역할을 원했어요. 가족도 그걸 알았죠.”

AI는 그 데이터를 토대로 킬머를 스크린에 올렸다. 목소리는 암으로 손상된 채로. 영화 속 캐릭터도 결핵을 앓는 인물이었다.

현실과 서사가 겹쳤다.


여기서 미래가 보인다.

지금 이 사례는 논란이 적다. 유족의 동의, SAG 가이드라인 준수, 보상까지. 하지만 다음 케이스는 어떨까.

스튜디오가 결정권을 가질 때. 유족이 없을 때. 돈이 개입될 때.

곧 모든 배우는 자신의 “디지털 자산"을 유언장에 써야 할 것이다. 어떤 역할은 허락하고, 어떤 역할은 거부할지.

이미지 하나, 목소리 하나 — 사후에도 작동한다. 허락 없이도 가능하게 된다면, 그게 더 무서운 일이다.


AI가 바꾸는 건 기술만이 아니다.

죽음도 이제 편집된다. 동의가 미래의 가장 비싼 자산이 될지 모른다.


출처: Variety · The Verge